망고여관 체류 3일차

11/14

계획은 첫날부터 틀어졌다.

미리 예약해놓은 숙소에 갔더니(성북동 같은 산동네에 계단도 엄청 많고 가방 3개 들처메고 올라갔는데)
나한테 준 방 벽이 천장 끝까지 연결되어 있지 않네? 공동 거실 쪽으로 공간이 연결돼 있었다.
무뚝뚝한 담당자가 방을 안내해 줄 때만해도 몰랐는데 그녀가 떠나고나서야 발견했다.
모기도 쿨하게 막 넘나 들었다. 공동 화장실 겸 욕실도 벽이 다 막혀있지 않았다.

맙소사...였지만 너무 피곤해서 1시간 정도 침대 위에 기절. 정신차리고 나서 사태의 심각함을 인지했는데, 왠일이야. 아까 연결됐던 숙소전용 와이파이도 이제는 불통이다.

담당 직원은 이미 퇴근했고 하룻밤 묵고 다음날 아침에 문제를 해결하던가 아님 숙소를 옮길까 하다가,
아무래도 불안해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너무 무섭잖아..옆방에는 이미 모르는 작가가 한 명 거주하는데...)
화도 나고 어이도 없어서 인터넷으로 급하게 호스텔을 찾았다.

다행히 일주일 정도 묵을 싼 도미토리가 있는 '망고 inn' 이라는 숙소를 찾았다. 예약사이트에서 본 사진으로는 창문이 있는 거실과 베란다도 있었다.
내가 작업하려던 동네도 도보로 30분 정도였다. 

새벽 4시반부터 움직였는데 다 저문 저녁, 아직도 이동해야한다니ㅜㅜ, 씩씩거리며 다시 MRT를 타고 내린 후 길도 잃었다. 지도가 들어있는 핸드폰 배터리는 2%인가 그랬고. 밥은 종일 한 끼 먹은 게 다이고.
겨우겨우 숙소를 찾아 체크인에 성공했다.
첫 숙소 담당자가 너무 인상이 안 좋아서인가, 리셉션 직원이 느리고 순둥순둥한 게 마음에 들었다.

빈 침대 2층을 배정받고 나서 배고픔에 근처 야시장을 찾았다.
다행히 싸고 맛있는 밥집이 문을 아직 닫지 않아 허겁지겁 그릇을 싹 비웠다.




11/16



용산사 근처 동네를 누비고 다니는 백수의 모습.



오늘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어제는 답사를 다녔다. 
한국에서도 막 하고 다녔지만 여행에선 정말 더 막 하고 다닌다.
머리도 안 빗는다. 집 잃은 동네 개 같다. 좋다.

아직은 주민들의 눈치가 보여서 허겁지겁 그림을 그리는 편이지만 조금씩 적응해나가고 있다.
평소에 작업을 하도 안 했더니 드로잉이 엉망이고 사실 뭘 그려야할지도 모르겠다.
아직 3일째니까.



처음으로 대만식 백반집에서 밥먹기 성공했다.
음식이 입에 잘 안 맞았는데 이런 밥이라면 든든할 것 같다. 


한적한 골목길, 아무도 없었다. 챙겨 온 낚시 의자에 앉으니 그늘이 선선하다.




숙소 근처에 유명한 절이 있다. 전쟁 때 사람들을 지켜준 영험한 기운이 있는 곳이라 가이드북에 나온다.
이 지역 사람들이 전쟁 당시 절로 모여 피신 중이었는데 평소같지 않게 모기떼가 심하게 몰려와 사람들을 괴롭혔다. 어쩔 수 없이 모두 절 밖으로 나갔다. 그 날 밤 절은 적군의 폭격을 맞았다고 한다.

이 절에는 점괘를 보는 반달 모양의 붉은 나무 조각이 있다. 궁금한 것을 묻고 나무 조각 두 개를 던져 서로 같은 면이 나오지 않으면 내가 물은 것에 대한 긍정적인 대답이라 한다. 실로 절에 오니 사람들이 그 나뭇조각을 던지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딸각딸각 소리가 귀여웠다.
그래서 나도 오늘 소원을 점쳐봤다. 
그렇게 될 거라고 여기 신이 대답했다.


덧글

  • 차쿠리 2017/11/24 18:34 # 삭제 답글

    용산사 근처엔 홍등가가 있는데 질펀한 느낌의 무서운 아주머니들이 호객을 하는 사이를 잽싸게 지나쳤던 기억.. 세희 글 그림 너무 재밌다!
  • ㅅㅎ 2017/11/24 18:47 # 삭제

    오마닛 쿠리짱 여기 다녀갔구나
    좀 그런데가 많지...;; 나도 적잖이 놀라긴했지만 잘 싹싹 피해다니고 있어! 이노쿠리 보고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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