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선생 춴의 어시스턴트 생활 -2부

완화역. 우리는 그 곳으로 재빠르게 이동했다.

춴과의 동행은 독특한 점이 있었다.
우선 그녀와 나, 둘 다 영어가 매--우 서투르다는 것. 그래서 대화가 거의 없다는 것.
서로에 대해서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
대화없이 각자의 볼 일은 보고 있다는 것. 춴은 끊임없이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통화 혹은 메세지 주고받기. 나는 시시때때로 수첩에 드로잉 끄적이기. 주변 살피기.

나는 여기에서 하는 일들이 모두 서투른 이방인이고 가는 곳마다 거의 초행이라
그동안 내 관계의 방식과 달리 모든 결정권을 춴에게 주었다. 춴의 행동을 보고 다음 일을 짐작하거나 춴의 지금 행동이 마치기를 질문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나의 행동 또한 의사소통의 한 방법이기에 전혀 불편하거나 초조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춴의 패턴을 파악한 후에는 편하기까지 했다.

사실 지롱이란 곳에 무얼 하러 가는지도 확실히 파악하지 못했다.
몇마디 영어 단어로 유추하는 우리의 대화는 오히려 사실을 헝클어뜨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행은 이상하게도 흥미로웠다.









한 번 기차를 환승해 지룽역에 다다랗다.
새까만 밤이 됐다.
지롱역은 플랫폼 지붕이 있으나마나 비가 마구 몰아쳐 우산을 써야할 정도였다. 출발 전 춴은 지롱은 늘 비가 온다고 했었다. 그렇다.

표를 끊고 나오는데 같이 나오던 춴이 안 보였다. 앞뒤로 사람이 빼곡한데 놓쳤나? 하고 두리번거리니 이내 그녀가 보였다.
내게 작은 기차표를 한 장 주었다. 나는 이미 개찰구에 내고 나와서 없는 표인데. 가지라고 했다.
이미 한국에선 없어진 형태(뒷면은 마그네틱이 덮인)의 귀여운 기차표라 유심히 꺼내서 보고있는 걸, 아마 봤나보다. 본인은 표를 내지 않는 어떤 방법으로 개찰구를 통과한 것 같다.



사선으로 내리는 비를 뚫고 성큼성큼 춴을 따라 걸어갔다.
항구도시인 것 같다. 하지만 바다 쪽이 아닌 인파가 북적북적한 저잣거리 쪽으로 간다.
아, 예상이 살짝 됐지만 오늘의 먹방을 찍으러 왔구나.

춴은 훌륭한 음식사냥꾼이었다.
예리한 눈빛으로 지나치는 식당과 식료품점과 디저트 가게를 스캔했다. 어떤 곳은 서서 음식을 지켜보기도 하고 가게에 들어가 질문을 하기도 했다. 모르는 음식이 나타나면 매우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우리의 첫 목표물이 나타났다. 길가에 있던 작은 가게에 디저트 빵류를 팔고 있었고 대만식이었다.
거기서 춴은 레몬케이크 2개, 펑리수 파인애플맛, 딸기맛을 한 개씩 샀다. 그리고 내게 아이폰을 쥐어준 후 찍어달라 했다.
잘 훈련된 어시스턴트인 나는 낮에 했던 것처럼 빠르게 일을 수행했다.
펑리수는 지금껏 내가 대만에서 먹은 것 중 제일 맛있었다.

곧 인파가 길을 이룬 야시장이 나타났다. 춴은 킁킁거리며 지룽이 타이페이와 매우 다른 게 느껴지지 않냐고 했지만 사실 난 잘 못 느꼈다. 내겐 아직 그저 '대만'일 뿐이었으나 춴이 아주 신나한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 우리의 행보는 아주 정형화된다. 맛집으로 보이거나 춴이 관심있는 가게에서 음식을 사고 나는 그걸 찍고, 그녀는 멘트를 달아 곧바로 sns에 올린다. 나는 춴이 맛보고 권해주는 음식을 먹고는 복터졌구나 싶었다.
겁이 나서 그동안 못 먹었거나 뭘 파는지도 몰라서 접하지 못한 음식들을, 게다가 진짜로 맛있는 것만 먹게 되다니.
이번 대만여행에서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던 영역이, 사실은 음식이었다.

우리가 먹은 것은 거의 열 가지나 된다.
레몬케이크, 펑리수, 오뎅튀김, 일본식 닭꼬치, 버섯넣어 지은 양념밥, 게앞다리살 수프, 수제 소세지, 간장비빔당면, 카레국수볶음, 유부와 고기를 넣어 만든 오뎅 수프.
특히 지롱은 대만 제2의 항구도시라 그런지 음식에 들어간 해산물이 아주 훌륭했다.

먹을 때마다 너무 바빴기 때문에(촬영과 시식으로) 그림으로 거의 못 남겼다.









배가 터져 죽을 것만 같았다. 위와 폐가 나눠진게 다행이었다. 숨은 쉴 수 있으니말이다.
마지막으로 시장초입 노점에서 건강한 설탕물 같은 차를 한 잔씩 마셨다. 춴은 우리의 일정이 끝났다 했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저 쪽은 바다냐 물었다.
춴이 가볼래? 물었고
당연히 예스.




시내 안으로 들어와 있는 좁은 만의 물은 비바람에 첨벙첨벙 지들끼리 부딪쳐 시끄런 소리를 냈다.
아주 넘실거렸고 내 기분도 같이 넘실댔다.
못된 바람 덕에 춴의 우산이 확 뒤집어져버려 깔깔댔다. 그 비바람에도 춴은 담배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완화역에 돌아와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사 그녀에게 선물이라며 건넸다.

덧글

  • eunmi 2017/11/24 07:28 # 답글

    재밌는 친구를 만났네요! 그림일기 보는 거 같아 ㅎㅎ 다음편도 기대합니다!
  • ㅅㅎ 2017/11/24 18:43 # 삭제

    어머 백만년만에 블로그 이웃님이 방문하셨네요 ㅎㅎ 은미만큼 재밌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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