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리블랙커피.노와이파이.오케이?

재밌는 가게.

힘들 때였을거다. 지친 밤이었던 것 같다. 지쳤었다.
자주 지나치는 곳에 안 보이던 카페가 하나 눈에 띄었다.

아직 커피 한 잔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
성큼 들어가 몇 시까지 하냐고 물었다. 모자 쓴 주인이 12시에서 12시까지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성큼 나왔다.
근처에서 작업을 마치고 다시 카페로 들어섰다. 공간은 작았고 손님 두어명이 바 앞에 자리를 잡고 얘기 중이었다.
주문하려고 주인에게 다가가자,
난데없이
'온리블랙커피.노와이파이.오케이?' 이러지 않는가. 인상에 힘이 들어가보였다.
나는 슬며시 웃었다. 눈썹이 처지는 느낌이었다. 알겠습니다.
근데 주인 바로 옆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보여서 손가락으로 ? 가르키니 단호히 아니란다.
목이 타니 아이스커피를 시켰다. 블랙으로.


문 바로 앞, 작게 난 창으로 밖이 보이는 선반테이블 자리에 앉았다.
맞은 편 후미진 공원엔 가로등 불빛 아래로 스무명은 되는 중년들이 줄맞춰 건강체조를 하고 있었다.
머리로 포물선을 그어 카페를 살핀 후, 생각이 들어 카페 안 쪽으로 몸을 돌려 자리를 고쳐앉았다.
살면서 카페를 그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 곳이 맘에 들었다.
주인은 음료를 만들 때 벽을 보고 있다. 뭔가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굳은 손이 좀 풀려갔다.




1시간인가 주인이 내 준 쓴 커피-그다지 시원하진 않던-를 마시며 바삐 끄적였지만 진이 다 빠져버렸다.
자리를 정리하고 예상보다 비싸게 계산을 했다.
가게를 나와 느리게 두리번거리며 걸어가는데 뒤에서 주인이 쫓아나왔다. 아 물건을 두고 나왔다.
아까 바에 서 있을 때보다 덜 무서워 보였다.



며칠 후, 그림을 완성하려 벼르고 있다가
다시 들른 가게. 오늘은 손님이 아무도 없다.
조용히 저번 자리에 앉아 한 숨 놓고 있으니 머쓱하게 다가와 뭘 슥 내민다.
메뉴판. 이런 것도 있는 곳이었군?
아마 저번엔 뭔가 재료가 부족했거나 기계에 문제가 있었나보다.
카푸치노를 시켰다.


양피지 필사본 같은 메뉴판.


그림은 지난 번 20% 정도만 남겨둔 지라 금방 완성했다. 책을 읽었다. 이상하게 손님이 오지 않았다. 책을 읽었다.
몇 년 전에 읽다만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 중인데 겨우 전에 본 지점까지 따라잡았다.
마침 어떤 사람이 조용히 들어와 커피를 시켰다. 맘 편하게 일어났다.

(나중에 그림 카피를 우편으로 보내려고) 주소를 물었다. 그간 주인은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음에 아는 체라도 한 적이 없었다.
뒤에서 구석구석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고 양해를 구한 적이 나도 없어 사실은 미안했다.
근데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다. 난감하여, 밖으로 나가 건물 벽에 붙은 숫자로 된 주소판을 손가락으로 툭 찍었다.
그렇게해서 주소를 받았다. 하지만 이걸 손으로 제대로 옮겨 쓸 자신이 없다.(다시 적다가 왠지 잘못된 한자를 쓸 듯한 잘 쓴 필기체)
스캔해서 고대로 주소란에 붙여야겠다.
언제 집에 돌아가기 전에 블랙커피를 뜨겁게 한 잔 마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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